근본원인 분석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모든 결과는 그 원인으로 인해서 발생한다.
이건 TRIZ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방법론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 결과를 개선할 수는 없다.
거실 마루가 썩었다면 어디에서 물이 샜는지를 찾아야 하고, 왜 그 곳에서 물이 샜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어디를 어떻게 공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예전에 우리 아파트에서 아랫집 거실 샤시 천장 부분에 물이 새서 벽지가 얼룩지고 난리가 났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과 동네 설비보수 전문가 세명이 우리집을 방문해서 진단을 했다.
아파트 외벽에 크랙이 생겼고 그 사이로 물이 샜을 거라는 의견도 나왔고, 우리 집이 거실 확장 공사를 하면서 우수관 주변에 방수처리를 미흡하게 해서 그 틈으로 물이 샜을 거라는 의견도 나왔다.

외벽을 원인으로 믿는다면 외벽 도장 전문가를 불러서 방수 도장을 다시 해야 하고 우수관 방수처리를 원인으로 믿는다면 시설보수 업체를 불러서 우리집 마루 바닥을 까보아야 한다.
무엇이 진짜 원인인가에 대한 선택이 우리의 아이디어와 대책을 결정한다.
순간의 선택이 수십만원의 낭비할 수도 있다.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TRIZ 도구인 ‘근본원인분석’에서는 어떤 추천을 해주는지 들어보자.

원인을 밝혀내려면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원인을 밝혀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가 아픈 일이다. 때로는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원인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원인들을 더 상상해보는 논리적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파트 외벽의 크랙이 원인이라고 지목했던 전문가가 말한 근거는 외벽에 크랙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 크랙이 실제로 충분히 커서 빗물이 지나갈 정도인가에 대한 다른 근거는 없었다.
우수관 방수 문제를 원인이라고 지목했던 전문가의 근거는 발코니 천장의 누수보다 거실 천장의 누수가 더 심하다는 것이었다.
외벽으로부터 빗물이 온 것이라면 그쪽이 더 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추론이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우리는 점점 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만약 외벽 크랙이 진짜 원인이라면 비가 오는 날은 누수가 더 심해지고 비가 안 오는 날은 누수가 없어야 한다.
만약 우수관 방수가 문제라면 윗집에서 빗물이 내려올 때 누수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비가 오는 날도 누수가 발생할 것이고 비가 오지 않더라도 윗집에서 우수관으로 물을 내리기만 한다면 아랫집에서 누수가 발생할 것이다.
원인-결과 관계를 차근차근 따져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무엇이 원인인지 고민하고 그것이 진짜 원인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그 자체가 우리를 다음 질문, 올바른 질문, 그리고 진실에의 접근으로 이끌어준다.

이것이 TRIZ 근본원인분석이 우리에게 주는 힘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해보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게 된다

나는 분명 외벽 크랙에 방수 도장을 할 것인지 우리 집 거실 바닥을 뜯어볼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추정되는 원인은 두 가지이고 무엇이 진짜인지를 알 수가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는 은연 중에 급한 선택을 요구받게 되고,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해보면 내가 지금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진짜 원인을 찾고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인데도 내가 지금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정의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메타인지’라고 부른다.
공부를 잘 하고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 메타인지가 높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아는 것이 많거나 시험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잘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나의 강점은 무엇이며 나의 약점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메타인지다.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결국 높은 성과를 낸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열심히 문제집을 풀어봤던 것이다.
문제집을 풀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공부를 잘 마친 부분과 아직 부족해서 많이 틀리는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문제집을 풀어보는 것이다.
바로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다.

원인분석이라는 과정을 통해 차근차근 생각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인과관계가 확실한지를 따져보면 우리는 바로 이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다.

TRIZ 근본원인분석을 통하면 이렇게 나 스스로의 메타인지를 높일 수 있다.

원인분석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어떤 일을 해결하고 싶다면 하위원인을 다섯단계까지 찾아 내려가보라고 한다.
그래서 5 Why 기법이라고 불린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5 단계까지 분석을 했는데도 풀리지 않는 문제는 진짜 없다.

지난 십여 년간 수많은 대기업/중소기업과 함께 기술개발 프로젝트 컨설팅을 해 본 경험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 단계 정도까지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체계적이지는 못 한 경우가 많다.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 얼마나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 프리토킹으로는 몇 시간씩 계속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심플하고 명확한 인과관계로 설명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는 것은 많지만, 그것들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 하다.

마치 동네 골목길 구석 구석 안 가본 곳이 없는 동네 토박이 어르신이, 정작 동네 지도는 그리지 못하는 경우이다.
어느 골목길에 가보면 왼쪽으로 꺾으면 뭐가 있고 오른쪽으로 돌면 누구네 집이 있는지 다 안다.
하지만 지도는 못 그린다. 이런 경우가 진짜 많다.

왜 그럴까?
개별적인 정보 습득을 위해 공부도 하고 실험도 하고 해석도 하고 회의도 하고 많이 하면서 여러가지 지식을 쌓은 축적의 결과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논리적 사고에는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다.
논리적 사고에 대해서는 연습 부족인 것이다.

원인을 찾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리하는 것이 진짜 힘이다

자기 분야에 경험이 많은 숙련자들은 3~4 단계까지 원인을 말할 수 있다. 이 정도 정리를 하려면 논리적 사고도 어느정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 됐다고 해서 프로젝트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회사 프로젝트라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의 지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전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알고 있는 경험지식만으로 해결이 된다면 왜 이 프로젝트를 회사에서 하겠는가.
이쯤 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원인”에 대한 상상력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들을 인과관계로 잘 정리하되, 그 원인들 사이사이에 비어 있는 틈을 발견하고, 그 틈에 해당하는 현상들을 상상해 내야 한다. 논리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가 불과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잘 내는 사람이 새로운 원인에 대한 추정도 잘 한다. 새로운 원인을 상상하고 발견하는 것 자체가 곧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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